AI가 유전변이를 해석하는 소프트웨어 ‘제브라(GEBRA)’가 페루 공공의료기관의 희귀질환 진단 현장에 들어간다. AI 기반 희귀질환 진단 기업 쓰리빌리언(대표 금창원)이 한국국제협력단(KOICA)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IBS) 사업자로 선정돼 이 사업을 추진한다. 사업은 2027년 6월부터 2032년 5월까지 5년간 예정돼 있으며, 페루 공공의료기관에 희귀질환 유전체 진단 인프라와 유전체 기반 신생아 선별검사(gNBS)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이다.
포용적 비즈니스 프로그램(Inclusive Business Solution, IBS)은 민간기업의 기술과 사업 역량으로 개발도상국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을 구축하도록 지원하는 코이카의 민관협력 프로그램이다. 쓰리빌리언은 이 사업으로 중남미 시장에 진출한다.
NGS 장비와 AI 해석 소프트웨어를 현지 거점 병원에 도입
제브라는 쓰리빌리언이 자체 개발한 AI 유전변이 해석 소프트웨어로, 유전변이를 선별하고 해석하는 일을 지원한다. 쓰리빌리언은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장비와 제브라를 현지 거점 병원에 도입한다. NGS는 유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해 유전질환 원인 변이를 확인하는 기술이다.
거점 병원은 지방 의료기관과 연계하는 진단체계로 운영된다. 사업은 리마와 카야오를 비롯한 5개 지방 지역에서 진행된다. 이 사업으로 희귀질환이 의심되는 소아와 일반 신생아 5000명의 유전체 검사를 지원하고, 현지 공공의료진 1500명을 교육한다.
페루에서는 의료 인프라가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다. 전문 의료인력과 진단 인프라의 90% 이상이 리마에 집중돼 있어 지방 환자가 유전체 검사와 전문 진료를 받기 어렵다. 쓰리빌리언은 페루 보건부(MINSA) 자료를 인용해 페루 희귀질환 환자를 약 200만 명으로 추정했다. 지역 간 의료 격차를 줄이는 것이 이번 사업의 목적이다. 이를 위해 지방 의료기관과 이어지는 진단체계를 짜고, 현지 거점 병원에는 유전체 검사 인프라를 새로 갖춘다.
검사·변이 해석·진단 보고를 현지가 스스로 수행
사업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는 현지 의료기관이 외부 지원 없이 검사와 변이 해석, 진단 보고를 자체 수행하는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쓰리빌리언은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품질관리 체계를 마련한다.
사업이 끝난 뒤에는 제브라를 클라우드 기반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로 공급하고, 원격 품질관리 서비스도 제공한다.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으로 초기 진단 인프라를 구축한 뒤 소프트웨어 공급과 유지관리 서비스를 통해 현지 의료기관의 운영을 지원하는 구조다.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매출을 확보하고 페루 모델을 인접 중남미 국가로 확대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이숙진 쓰리빌리언 사업총괄이사는 중남미를 두고 “중남미는 잠재 희귀질환 환자 규모가 매우 크고 진단 수요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인프라가 부족해 공공의료 부문의 혁신 잠재력이 가장 큰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80여 개국 서비스, 30여 개국에서 제브라 사용·평가
쓰리빌리언은 현재 약 80개국에 희귀질환 유전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수도권 환자의 유전진단 접근성을 높이는 사업도 해 왔다.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 진단지원사업’에 참여한 것이다.
제브라는 해외 공급 경험도 있다. 모로코 공공의료기관에 제브라를 공급해 신생아집중치료실(NICU) 신속 유전체 진단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참여했다. 미국, 오스트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30여 개국 의료·연구기관이 제브라를 사용하거나 도입 평가 중이다.
이숙진 이사는 사업 이후 구상에 대해 “이번 코이카 IBS 사업을 통해 페루에 성공적인 자립형 진단체계를 정착시키고, 이를 교두보 삼아 수조 원 규모의 중남미 공공의료 시장에서 제브라 사업을 확대하며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페루 사업 기간은 2027년 6월부터 2032년 5월까지 5년이다. 사업 종료 이후에는 제브라 SaaS 공급과 원격 품질관리 서비스로 운영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