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도서를 AI가 쓸 수 있는 데이터로 가공해 AI 기업에 공급하는 라이선싱 플랫폼이 창업 1년여 만에 글로벌 AI 기업과의 누적 계약 규모 150억원에 이르렀다. 2025년 7월 설립된 멘탯(Mentat)의 이야기다. 이 150억원은 실제로 인식한 매출이 아니라 계약 규모다. 멘탯의 전병욱 대표는 출판계 출신으로, 국내 출판사와 글로벌 AI 기업 사이에서 거래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멘탯은 출판사로부터 도서의 AI 활용 권리를 확보하고, 원문을 데이터로 가공해 AI 기업에 넘긴다. 창업 1년여 만에 확보한 제휴 출판사는 약 95곳이고, 현재 라이선싱 대상 도서는 약 3만4000종이다. 내년까지는 이 대상 도서를 10만 종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CMS 등록부터 시맨틱 청킹·리랭킹 가공까지
제휴 출판사가 멘탯의 콘텐츠관리시스템(CMS)에 도서를 등록하면, 멘탯은 서지 정보를 연동한다. CMS는 출판사가 도서를 등록하고 AI 제공 범위를 설정하는 시스템이다.
이후 시맨틱 청킹(Semantic Chunking)과 리랭킹(Re-ranking) 기술로 원문을 AI 활용 형태로 가공한다. 시맨틱 청킹은 문장 의미에 따라 데이터를 나누는 기술이고, 리랭킹은 검색 결과의 관련성을 다시 판단하는 기술이다.

실제 공급 계약을 맺을 때는 출판사별로 동의를 다시 받는다. 멘탯은 여러 출판사의 콘텐츠를 모아 AI 기업과 협상한다. 도서별로 AI 학습용과 참조·인용 허용 여부를 구분할 수 있고, 향후 공급 설정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멘탯은 자체 데이터 서버와 게이트웨이로 접근 권한을 통제하고, 허용된 범위의 문단만 제공한다. 검색 과정에서 계약 범위를 벗어난 데이터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거래를 연결할 주체가 부족했던 시장
국내 출판사는 규모가 작아 AI 기업과 직접 협상하기 어렵다. AI 기업도 출판사를 일일이 찾아 권리관계를 확인하기 비효율적이다. 이를 거래로 연결할 주체가 부족했다는 것이 멘탯이 짚은 시장의 빈틈이다.
한국어 성능 개선,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 K컬처의 영향이 맞물리면서 양질의 한국어 콘텐츠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 전 대표의 분석이다.
글로벌 AI 기업과 체결한 라이선싱 계약의 누적 규모는 프레스킷에 100억원으로 적혀 있었다. 최근 누적 규모는 150억원이다.
학습 데이터 먼저, 참조·인용은 그다음
멘탯은 투자 유치 당시 참조·인용 라이선싱을 초기 사업모델로 제시했다. 하지만 초기 AI 기업들의 관심이 학습 데이터에 쏠리고 참조·인용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사업 순서를 바꿔 학습용 데이터 라이선싱부터 시장을 검증하고 있다.
전 대표는 참조·인용 라이선싱을 더 크게 보는 시장으로 판단한다. 다만 참조·인용 시장은 아직 성장 가능성을 검증해야 하는 단계다. 학습 데이터와 달리 참조·인용 구조에서는 도서 콘텐츠가 여러 차례 쓰일 수 있다.
전 대표는 학습 데이터 공급 사업과 참조·인용 사업 모두 콘텐츠가 충분히 확보돼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본다. 내년까지 대상 도서를 10만 종으로 늘리려는 목표도 이런 판단에서 나왔다.
멘탯은 도서 기반 검색·인용 시스템의 정확도와 응답 속도를 개선하는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참조·인용 서비스 쪽에서는 콘텐츠 활용 내역을 기록해 출판사에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출판계 출신이 신뢰를 쌓은 방식
전병욱 대표는 알라딘, 아라크네, 창비, 카카오엔터테인먼트를 거친 출판인이다. 알라딘에서는 중고서점·전자책 사업을 경험했다. 창비에서 자체 도서 중심이던 오디오북 사업을 다른 출판사 콘텐츠까지 수급하는 유통 대행으로 넓히는 데 참여한 경험을 인정받아 당시 카카오페이지의 신사업 조직에 합류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오디오 드라마·채팅 소설 사업을 맡았다.
전자책 서점에서 영업을 맡던 시절에는 퇴근 후 한겨레 출판문화센터에서 전자책 제작 기술을 배웠다. 창비에서 디지털 사업을 하며 기술 이해의 필요성을 느낀 뒤에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했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에도 참여했다.

전 대표는 “출판계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생각해요. 제한은 있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했고, 매번 도전하는 것에 즐거움을 찾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출판사를 하나씩 모아 간 과정에 대해서는 “출판계 출신이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않았을 거라는 말씀을 하신 분들도 있었어요. 처음 믿어주신 분들이 다른 출판사를 소개해 주면서 조금씩 늘어났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멘탯은 앤틀러코리아의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2025년 앤틀러코리아의 프리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 팁스(TIPS)에 선정됐다.
4명이 꾸리는 조직, 신뢰를 해자로
전 대표를 포함한 멘탯 직원은 4명이다. 대표, 최고데이터책임자, 개발 인력 2명으로 구성된다. 전 대표는 “최소 인원으로 최대 효용을 내겠다는 생각은 확고합니다. 사람을 뽑을 때도 그 사람이 없으면 일이 안 되는지부터 봅니다.”라고 말했다.
투명성을 중시하는 것도 운영 기준이다. 전 대표는 “기술에는 해자가 없어요. 신뢰가 해자입니다.”라고 밝혔다.
도서 이후의 장기 사업으로는 전문가의 판단과 지식을 데이터로 만들어 AI 기업에 제공하는 사업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고,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 중이다. 성장 목표는 5년 뒤 지금보다 20배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