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제작비 장벽을 생성형 AI로 넘을 수 있는지 실험하는 감독이 있다. 스튜디오 여우별 홍정민 대표(감독)는 AI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극장용 장편 제작비를 20억원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수치는 아직 검증된 것이 아니다. 홍 대표는 지난 15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70억원 장벽이 만든 연구의 출발점
홍 대표는 2017년부터 장편 사극 애니메이션 ‘비운의 명장 흑치상지’를 개발해 왔다. 같은 해 이 작품은 충남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았다. 극장용 장편으로 제작하려면 당시 추산한 최소 제작비가 70억원 이상이었다.
홍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돌아봤다. “이야기와 캐릭터를 개발하고 파일럿까지 만들었는데 실제 장편으로 제작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꼭 이만큼의 돈이 있어야만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까. 제작 방식 자체를 바꿔보면 어떨까.”
70억원 이상의 장편 제작비 부담을 마주한 그는 그때부터 생성형 AI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의 목적은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완성하는 것이다. 파일럿 영상 제작에는 언리얼 엔진을 썼다. 현재 그는 AI와 기존 제작 기술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씨댄스 2.0과 수노로 만든 90초 단편 ‘스티칭 하트’
홍 대표가 AI로 제작한 90초(1분 30초) 단편 애니메이션 ‘스티칭 하트(Stitching Hearts)’가 국제 공모전에서 Honorable Mention을 받았다. 대회는 올해 열린 ILLUMINATE Oneness of Humanity Micro-Shorts Competition(2026)이다. 이 작품은 최종 후보 15편에도 이름을 올렸다. 주최 측 설명에 따르면 이 대회에는 67개국에서 648편이 출품됐다.
영상 생성에는 AI 영상 생성 모델 씨댄스(Seedance 2.0)를, 음악에는 음악 생성 도구 수노(Suno)를 활용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는 사흘이 걸렸고, 실제 제작에 투입한 시간은 약 10시간이다.
다만 AI를 쓴다고 창작의 핵심이 넘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시나리오와 이야기 구조는 직접 결정한다. 홍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AI로 영상을 만드는 것 자체는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어떤 장면을 보여줘야 관객이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야 여운이 남을지는 여전히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도구의 성능만으로는 작품이 완성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비싼 툴을 쓰고 프롬프트만 잘 쓴다고 좋은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건 아니에요. 캐릭터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떤 장면에서 관객이 웃거나 슬퍼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거죠.”

지원사업과 수상 이력
홍 대표는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기획창작스튜디오와 AI 제작 지원사업을 거쳤다. 2025년 AI 제작 지원사업으로 만든 ‘Mew & Bow’는 해외 AI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경주의 빛’은 APEC AI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2024년 한국시나리오연구소(KSI)에서 1년간 전문 과정을 수강했고, 같은 해 스튜디오 여우별을 설립했다.
애니메이션을 꿈꾸게 된 계기는 팀 버튼 감독이 만든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다. 홍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돌아보면 기술은 계속 바뀌었는데 제가 만들고 싶은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저에게 AI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찾은 또 하나의 제작 방법입니다.”
숏폼 IP ‘마눌냥’, 만들면서 팬을 모으는 실험
스튜디오 여우별은 자체 캐릭터 숏폼 IP ‘마눌냥(Manul-nyang)’도 운영한다. 마눌냥은 공개 일주일 만에 누적 조회수 1600만회를 기록했고, 그 일주일간 팔로워가 약 2만6000명 늘었다. 첫 게시 후 24일이 지난 시점에는 누적 조회수 4000만회, 팔로워 약 4만5000명이 됐다.

기존에는 애니메이션을 완성한 뒤 관객에게 공개하고 반응을 확인했다. 숏폼에서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먼저 선보이며 반응을 확인한다. 홍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작품을 완성한 다음 관객을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팬을 모을 수 있다는 거죠.”
다음 과제는 장편 검증과 태권캣
홍 대표가 시나리오를 쓴 오리지널 IP ‘태권캣(Taekwon Cat)’은 3D 애니메이션으로 개발 중이다. 숏폼으로 먼저 팬덤을 형성하는 전략을 이 작품에도 적용할 예정이다.

스튜디오 여우별의 장기 목표는 극장용 AI 하이브리드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장편에서 캐릭터와 장면의 일관성, 극장 상영 수준의 완성도는 아직 검증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홍 대표는 목표를 이렇게 밝혔다. “저는 단순히 제작비가 싼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규모가 작은 스튜디오도 좋은 이야기와 연출력이 있다면 자기 IP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 기자단은 KAIA와 벤처스퀘어가 함께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