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가 프론티어 AI 모델의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실리콘밸리 안팎에서 논쟁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앤스로픽을 비롯한 AI 기업들의 데이터센터·반도체 확보 계획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안전성 검증을 위한 시간을 벌자는 명분과, 실제로는 계속 늘어나는 컴퓨팅 투자 사이의 간극이 이번 논쟁의 핵심이다.
아모데이의 3단계 구상, 실제 시행은 1단계뿐
아모데이는 9월 12일 공개한 에세이에서 “AI 모델의 능력을 개선하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구상은 외부 평가자 상주, 민주주의 국가 간 공조, 국제 공조라는 3단계로 구성돼 있다. 다만 앤스로픽이 실제로 즉시 시행에 나선 것은 외부 평가자에게 사무실·노트북·출입권한을 제공하는 1단계뿐이며, 반도체 구매나 데이터센터 건설을 축소한다는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실제로 앤스로픽과 오픈AI는 20~30메가와트(MW) 규모의 소형 데이터센터 부지를 계속 찾고 있다. 테크 매체 디 인포메이션이 비공식으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앤스로픽은 최근 11개월간 약 5170억달러 규모의 컴퓨팅 자원 임차 계약을 맺었다. 오픈AI 역시 신모델 GPT-6 아스트라 훈련에 10만개가 넘는 GPU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드컴 등 공급망도 투자 확대 그대로
반도체 공급망 쪽에서도 속도 조절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 브로드컴은 2027 회계연도 AI 반도체 매출 전망을 약 1150억달러, 2028 회계연도는 약 2300억달러로 각각 제시했으며, 목표치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보도가 9월 14일 나왔다. 시장에서도 이 같은 투자 확대 흐름을 안전 논쟁과 별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리콘밸리 내부도, 정치권도 엇갈린 반응
업계 내부에서도 공동 대응론에는 거리를 두는 목소리가 많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9월 16일 관련 발언을 통해,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과 함께 협력적 속도 조절에 선을 그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AI 안전장치와 관련해 “강하고 똑똑한 대통령”이라는 표현으로 자신감을 드러내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고,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도 비슷한 기류를 나타냈다. 중국 정부 역시 속도 조절론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7월 28일 공개된 관련 서한에는 당시 약 1100여명이 서명했고, 이달 기준 서명자는 1386명으로 늘었다. 그만큼 안전 검증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는 확산되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 투자·개발 속도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전문가들 “명확한 정의·검증장치 없인 공조 어려워”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안톤 라이히트, 스콧 싱어 연구원은 9월 15일 내놓은 분석에서, 명확한 정의와 검증장치, 정부 지원 없이는 기업 간 실질적 공조가 어렵다고 평가했다. 구글 딥마인드 등 다른 AI 연구조직들이 이번 논의에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지도 아직 뚜렷하지 않다.
한국은 이번 초기 논의에 참여하지 않았고, 위험평가 역량을 갖춘 국내 AI 개발사가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현재까지 실제 이행이 예고된 것은 아모데이가 제시한 1단계, 외부 평가자 상주뿐이다. 나머지 두 단계인 민주주의 국가 공조와 국제 공조는 여전히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결국 이번 논쟁은 안전성 검증이라는 명분과, 계속 커지는 컴퓨팅 투자라는 현실 사이의 격차를 보여준다. 외부 평가자 상주라는 작은 첫걸음이 실제 속도 조절로 이어질지는, 정의와 검증장치가 갖춰질 다음 단계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