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가는 히비스커스에서 뽑아낸 식물성 콜라겐 펩타이드 'VC-H1'을 상용화한 뒤, 이 기술을 AI 기반 신소재 개발 플랫폼 '바이오파운드라(BioFoundra)'로 확장하고 있다. 하경수 로가 공동대표는 시장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능을 먼저 분석하고, 이에 맞는 천연물·펩타이드 후보를 AI로 탐색해 가상 환경에서 분자구조와 효능을 검토한 뒤 실험·생산·인체적용시험·글로벌 판매로 연결하는 방식을 회사의 핵심 구조로 설명했다.

시장 수요를 먼저 읽는 AI 소재 개발
하 대표는 기존 소재 산업의 통상적인 순서를 뒤집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연구실에서 좋은 소재를 만든 뒤 시장에 내놓고 소비자를 찾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시장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기능을 먼저 확인하고 그 수요에 맞는 천연물 소재를 개발하려고 합니다. 소재 개발의 출발점을 기술이 아니라 고객에게 두는 것입니다.” 바이오파운드라는 이 접근을 시스템화한 플랫폼으로, 유전체 기반 디지털 트윈 기술 '닥터트윈AI(Dr. Twin AI)'를 활용해 후보 물질의 효능을 가상으로 검증한 뒤에야 실제 실험 단계로 넘어간다.
이 같은 구조는 로가가 처음부터 기술 중심이 아니라 문제 해결 중심으로 사업을 설계해왔다는 배경과 맞닿아 있다. 하 대표는 “애플리케이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여러 사업을 거치고 나니 제가 가장 오래 봤고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분야가 농업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어요. 농업이 가진 가치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SK플래닛, 11번가, 쿠팡 등에서 커머스 경험을 쌓고 파머스라운지, 한국시계병원 등 두 차례의 창업을 접었던 이력이 지금의 고객 중심 소재 개발 방식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히비스커스에서 시작된 식물성 콜라겐
바이오파운드라의 출발점은 라오스 유기농 농장이었다. 로가는 2017년부터 라오스에서 히비스커스를 재배했고, 2019년 이를 활용한 식물성 소재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2년간 연구를 거쳐 VC-H1을 완성했다. 2021년에는 제조 기술과 원물에 관한 특허를 확보했고, 2022년에는 프랑스 시알 파리(SIAL Paris)에서 국내 기업 최초로 원료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하 대표는 원물을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 AI 기반 소재 개발의 신뢰도를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좋은 음식은 재료가 좋아야 합니다. 바이오 소재도 같습니다. 산업의 효율성만 따지면 직접 농사를 짓는 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원물과 공급망을 직접 관리해야 기술과 품질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게 제 안에 남아 있는 농사꾼의 기질인 것 같습니다.” 그는 농업 3세대로서 아버지에게 들은 말도 전했다. “아버지가 말한 농사의 공식이 있습니다. 한 번 잘되면 다음에는 잘 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는 날씨와 자연이 결정하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렇다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덜할 수는 없습니다. 사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 대표는 로가가 식물성 콜라겐 회사로 규정되는 데 선을 그었다. “로가가 식물성 콜라겐 회사로 출발한 것은 맞지만 그게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히비스커스에서 확인한 기술을 다른 천연물에 적용하고, 각 소재에서 더 신뢰도 높은 유효 성분을 찾아내는 것이 지금의 로가입니다.” VC-H1에서 검증한 AI 기반 탐색·검증 방식을 다른 천연물 원료로 확장하는 것이 바이오파운드라의 실제 전략인 셈이다.
작은 브랜드에도 R&D를
로가는 자체 연구소가 없는 브랜드에도 소재 개발 역량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하 대표는 “아무리 작은 브랜드도 자신만의 콘셉트와 원료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R&D는 대기업의 전유물에 가까웠어요. 자체 연구소가 없는 브랜드에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원료를 개발할 수 있는 연구실을 제공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는 소재 라이선싱과 CDMO(위탁개발생산) 방식으로 B2B 고객을 우선 지원하고 있다.

하 대표는 이 단계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 신뢰를 쌓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기술과 생산 능력, 신뢰를 더 쌓아야 하므로 B2B 고객부터 지원하고 있습니다. 작은 브랜드가 자체 R&D를 주도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갈 계획입니다.” 그는 궁극적으로는 개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성분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로가가 식물성 콜라겐 회사로 출발한 것은 맞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성분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회사가 좋다고 주장하는 제품보다 본인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글로벌 성과와 다음 단계
로가는 청주 제1공장을 가동 중이며 세종 제2공장을 짓고 있다. 2025년 매출은 300억원을 넘어섰고, 2026년 5월에는 KB인베스트먼트로부터 155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이 같은 성장은 2022년 시알 파리 그랑프리 수상과 2025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데모데이 참가로 이어진 글로벌 검증 과정과 맞물려 있다.
하 대표는 사업을 지속하는 근거로 신뢰를 꼽았다. “미션이 거짓으로 느껴지면 유능한 인재는 물론이고 고객 한 명도 데려올 수 없습니다. 신뢰는 짧은 말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래 지켜보는 과정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계속 이야기하고, 말한 것을 행동으로 지키려고 합니다.” 그는 AI로 소재를 설계하고 검증하는 바이오파운드라의 구조 역시 이 신뢰를 데이터로 뒷받침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로가는 CES 2027 출품을 준비하며 바이오파운드라와 닥터트윈AI 기반 소재 개발 사례를 알릴 계획이다. 하 대표는 “한 사람의 고객이 인생을 마칠 때 '로가 덕분에 조금 더 잘 살았다'고 말해줬으면 합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회사와 브랜드는 결국 그 감정을 남기는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시장 수요를 먼저 읽고 AI로 소재를 설계하는 방식이 작은 브랜드의 R&D 부담을 낮추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가 앞으로 로가가 증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