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문장을 다듬어주는 시대에 오히려 팀원의 보고서에서 판단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경민 리버스마운틴 대표는 AI가 만든 보고서에 판단이 빠지는 이유와 리더가 피드백에서 반드시 건네야 할 목적·맥락·진단·방향 네 가지 요소를 설명했다.
김 대표가 전한 한 리더의 사례가 이 문제를 보여준다. “20대 팀원이 보고서를 가져왔는데 읽어 보니 알맹이가 없었습니다. AI가 쓴 것 같아서 ‘이 부분은 왜 이렇게 썼어?’라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더 답답한 건 그다음입니다. 제가 피드백을 주면 그 내용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프롬프트에 넣고 다시 돌려옵니다.” AI로 형식은 그럴듯한 보고서가 늘었지만, 정작 왜 그렇게 썼는지에 대한 판단 근거는 오히려 빈약해졌다는 것이다.
수정 지시가 그대로 프롬프트로 돌아오는 악순환
더 큰 문제는 리더의 피드백 자체가 팀원의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리더가 “경쟁사 분석이 너무 뻔한데? 조금 더 깊이 있게 다시 해 와.”라고 지시하면, 팀원은 이 말을 그대로 AI에 입력해 새로운 결과물을 받아온다.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 없이 리더의 문장을 프롬프트로 옮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팀원의 판단력은 성장하지 않고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김 대표는 AI 활용 능력이 프롬프트 숙련도가 아니라 업무 맥락 이해도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프롬프트를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도 왜 이 보고서가 필요한지, 회사가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모르면 AI에게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이다.

목적·맥락·진단·방향, 네 가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김 대표는 해티와 팀펄리의 피드백 모델을 바탕으로 네 가지 요소를 제안한다. 이 모델은 어디로 가는지,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 다음에 무엇을 할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짚는다. 여기서 착안한 목적·맥락·진단·방향을 각각 따로 던지지 않고 하나의 대화로 연결해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진단만 전달하면 팀원은 이를 단순한 수정 목록으로 받아들여 다시 AI 프롬프트로 옮길 뿐이다. 반면 목적과 맥락을 함께 설명하면 팀원은 스스로 판단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김 대표가 예로 든 피드백은 다음과 같다. “이 보고서는 다음 달 신제품 가격을 결정하려고 요청한 겁니다. 현재 우리 원가로는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고서는 기능 비교표에서 끝나 있어 가격 회의의 근거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쟁사가 최근 2년간 가격을 내리지 않은 이유를 원가와 브랜드, 유통 관점에서 각각 확인해 보세요.” 이 말에는 왜 보고서가 필요한지(목적), 회사가 처한 상황(맥락), 현재 결과물의 문제(진단), 다음에 확인할 지점(방향)이 모두 담겨 있다.
정답 대신 질문을 건네는 법
김 대표는 리더가 정답을 곧바로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덧붙이는 방식을 권한다. “이 결론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유를 들까요?”라는 질문은 팀원이 스스로 근거를 재검토하도록 만든다. 이런 질문은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팀원이 자신의 판단으로 결과물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김 대표는 인수인계 파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조직의 취약함도 함께 지적했다. “직원 한 명이 퇴사했는데 업무 전체가 마비됐습니다. 인수인계 파일도 받았지만 소용이 없네요.”라는 사례는 문서로 남긴 결과물만으로는 판단의 맥락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리더의 피드백 기록을 조직 차원의 코칭 자산으로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AI가 보고서의 형식을 대신 채워주는 시대일수록, 리더가 목적과 맥락을 함께 설명하는 대화가 팀원의 판단력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진단이다. 수정 지시를 AI 프롬프트로 되돌리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결과물을 고치라는 말보다 왜 그 결과물이 필요한지를 먼저 나누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